정희민의 ‘비-평면 non-flat’
김남시 |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정희민 작가는 웹에서 구한 디지털 이미지들을 조작하여 인쇄 혹은 전사한 아크릴 미디엄으로 여러 겹의 레이어를 만든 후, 캔버스 위에 다양한 방법으로 겹쳐 올리는 방법으로 디지털 이미지의 질감을 실물화시킨다. 이 작업은 웹에서 찾은 꽃, 풍경 등의 이미지를 포토샵 같은 디지털 툴로 가공하고 재조합하여 작품의 ‘스케치’를 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작가가 ‘스케치’라 부르는 이 과정은 내가 보기엔 거의 ‘설계’에 가깝다. 이 작가의 작품 자체가 단순한 2차원 평면이 아니라 여러 겹의 레이어들이 복잡하게 구성된 ‘비-평면’ 조직체이기 때문이다. 그 ‘스케치’에는, 1차 지지체인 캔버스에 그려질 일정한 모양과 색의 형상들, 다양한 방식으로 접혀 그 위를 덮을 아크릴 미디엄 들의 구성이 모두 담겨있어야 한다. 이 스케치 자체가 여러 레이어로 된 디지털 이미지임은 당연한 일이다. 이 스케치에 따라 작가는 캔버스에 형상들을 그려넣고, 그를 지도삼아 그 위에 여러 겹의 레이어들을 겹치고 접어 쌓는다. 캔버스를 덮을 아크릴 미디엄 일부는 컴퓨터에서 조합된 디지털 이미지들을 UV 프린터로 채색한 것이다. 또 다른 레이어는 잉크젯 프린트 전사로 만들어진다. 작가는 아크릴 미디엄에 안료를 넣지 않고 그대로 활용해 모델링을 한 후 이미지를 입히거나 건조하는 과정에 안료를 전사해 얇은 레이어를 만드는데, 그를 위해서는 미디엄을 평평한 지지대에 바른 후 마를 때까지 – 겨울에는 몇 시간, 습기 많은 여름에는 며칠간 – 기다린 후, 껍질을 벗기듯 조심스럽게 떼어내야 한다. 그렇게 떼어낸 레이어는 다양하게 접거나, 묶는 방식으로 페인팅 된 캔버스 위에 부착된다.
컴퓨터로 이루어지는 디지털 이미지 조작과 프린팅, 캔버스 위에서 행해지는 페인팅, 여기에 그 캔버스에 오브제를 부착하는 일종의 콜라쥬 등이 결합된 정희민 작가의 독특한 작업방식은 지금까지 주로 “디지털 이미지의 비물질성과 회화의 물질성의 공존”(김홍기), “디지털과 회화의 변증법”(김정현)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되어왔다. 나는 이런 관점이 이제 바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일상의 대부분이 이미 디지털 네트워크에 편입되었고, 그와 더불어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이미지들이 이미 디지털화된 마당에 디지털 이미지를 ‘비물질적’이라 말하는 건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아가 오늘날 제작되는 거의 모든 페인팅 역시 직간접적으로 디지털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디지털은 이제 회화나 조각, 도예 혹은 섬유예술 같은 전통적인 매체에 대한 대립 항이 아니다. 디지털은 오늘날 거의 모든 예술 활동의 배경으로 작동 중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vs. 회화”의 구도로 정희민의 작업에 접근하는 것이 이 작가 작업의 개별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다.
나는 “비-평면 non-flat”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non-flat’은 평평하고, 납작하고, 굴곡이 없고, 매끄러운 등의 의미를 지니는 단어 ‘flat’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주지하듯 ‘flatness’라는 단어는 모더니즘 미술 이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에 의해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화려한 경력을 얻은 바 있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회화란 모름지기 그 “지지체의 불가피한 평면성 the ineluctable flatness of the supporter”1 을 적극 수용하여야 한다. 그 평면성이야말로 문학, 연극, 조각, 음악 등의 다른 예술과는 구별되는 “회화예술에서 독특하며 배타적인 것 unique and exclusive”2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비-평면’ 개념은 ‘평면성’이 회화예술의 독특하며 배타적인 것이라는 그린버그의 전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린버그가 회화의 평면성에 대립시켰던 ‘조각적 환영 sculptural illusion’이나 ‘가상적 깊이 fictive depth’를 지향하지 않는다. ‘비-평면’은 스스로 실제적 깊이를 가진 조각이 되지는 않으면서 ‘조각적 환영’에서 ‘환영 illusion’을, ‘가상적 깊이’에서 ‘가상 fictive’을 제거하려 한다. ‘비-평면 non-flat’은 ‘반-평면 counter-flat’이 아니다. ‘비-평면’은 평면을 넘어서려 욕망하지만 그를 위해 평면과의 대립을 추구하지 않는다. ‘비-평면’은 스스로의 평면성에 기반해, 그 평면성을 이용해 평면성을 넘어서면서도 자신의 평면성을 전적으로 폐기하지는 않는다. 평면과 반-평면 사이에 존재하는 ‘비-평면’은 그 둘 사이의 긴장감을 가지고 작업한다. 평면으로 평면을 넘어서려는 욕망, 평면에 체류하는 탈 평면의 지향, 이것이 ‘비-평면’이다.
정희민 작가의 작업이 ‘비-평면’의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건 초기 작업에서부터 드러난다. 2018년 전시 <UTC –7:00 JUN 3PM On the Table>에서 작가는 3D 모델링 스프트웨어 ‘스케치업’으로 작업한 과일, 칼, 빨대, 곰 인형 등의 3D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겨 그린 후, 그 위에 아크릴 미디엄과 오일로 두께감 있는 면을 모델링했다. 3D 이미지들이 주는 환영적 공간감이 마치 캔버스 표면에 떨어진 물감 얼룩처럼 보이는 실제 미디엄 덩어리들의 환영적 평면감과 역설적으로 대비되어 묘한 긴장감을 불러낸다. 이러한 ‘비-평면’의 긴장감은 2021년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기>에 출품된 Serpentine Twerk부터 시작, 2023년 개인전 <수신자들>까지 이어지는 새 작업방식에서 본격화된다. 여기서 작가는 아크릴 미디엄 레이어를 접고, 겹치고, 쌓아 붙임으로써 평면을 통해 평면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색한다. 통상적으로는 캔버스에 평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되는 아크릴을 작가는 평면을 넘어서기 위한 재료로 사용한다. 평평한 지지체에 발라 건조시킨 아크릴 미디엄을 떼어내 늘어뜨리거나, 묶거나, 접거나, 찢어 캔버스에 부착하는 것이다. 껍질 혹은 살갗처럼 얇고 평평한 아크릴을 겹치고 접어 쌓아 만든 복수의 레이어들은 단순한 ‘가상’이나 ‘환영’이 아닌 실제의 굴곡을 만들어내지만 이들은 결코 조각이 아니다. 이들은 작품의 1차 지지대인 캔버스의 평면성 속에서 여전히 평면으로서의 윤곽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평면’에 내재하는 긴장감이 더 크게 진동하며 나타난 작품이 <수신자들>에 출품된 <살아남은 자들의 평원>이다. 작가는 웹에서 잘려진 나무 등걸의 3D 이미지를 구해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통해 그 반전 이미지를 생성한다. 3D 프린터로 출력한 이 반전 이미지는 애초에 입력된 나무등걸 3D 이미지를 실제화할 거푸집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작가는 그 거푸집을 미디엄으로 가득 채워 캐스팅을 떠내는 대신, 그 안쪽 표면에 FRP를 펴 발라 종이짝 같은 레이어를 만들고 그를 떼어내 작품화하였다. 얇은 FRP 레이어가 잘라낸 나무등걸 만큼 넓게 접혀있어 마치 조각처럼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그건, 다른 작품의 아크릴 미디엄처럼, 평면 레이어가 굴곡지게 접혀 생겨난 ‘비-평면’이다. 접히고 쌓여 캔버스에 부착된 아크릴 미디엄들이 폐허 속의 아름다운 잔해같은 처연함을 불러낸다면, 캔버스라는 지지대에서 벗어나 갤러리 바닥에 껍질처럼 놓여있는 이 ‘비-평면’들은, 견고한 나무등걸의 육중한 무게감을 잃고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소멸해가는 물질의 멸실감을 강화시킨다.
1 . 그린버그, “모더니즘 회화”,<예술과 문화>, 346.
2. 그린버그, “모더니즘 회화”, <예술과 문화>, 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