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평면성에 대한 새로운 탐구

심소미 | 큐레이터







동시대 미술에서 ‘회화가 죽었다’는 논의도 있었지만, 결국에 회화는 형식적 토대를 유지하는 가운데 그 존속을 여느 매체보다도 강하게 이어가고 있다. 정희민의 작업은 오늘날의 회화성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무엇을 그릴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회화의 기본적인 틀, 형식적인 평면성부터 접근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엣지’라 칭해온 전통적인 회화의 평면성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동시대적 지각방식으로 통해 해석해나가는 지점이 특히 흥미롭다. 이는 전시의 전체적인 구성과도 관련된다. 이미지는 전체적으로 공간에 마치 설치 작품마냥 다뤄진다. 벽면과 공간 사이에 자리한 이미지들은 벽면에 걸쳐지기도 하고, 벽에서 공간으로 흘러내리기도 하고, 천장에 매달려 공간을 부유하기도 한다. 공간에 전체적으로 강약을 조절하며 짜임새 있게 배치된 작업은 공간 전체를 컴포지션한다. 전시가 공간적으로 잘 구성된 연극 같은 인상이라, 이 지점에서 필자는 정희민이 회화를 구현하는 형식적 특징부터 질문을 던져본다. 오늘날 회화의 연극적이고 설치적 구성은 과연 회화의 형식적인 확장인가? 이 지점에서 정희민의 작업은 회화의 설치적 효과, 연극적 공간 구성을 통해 형식적 확장을 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철저하게 회화의 평면성에 대한 연구로부터 공간으로 나아간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이미지를 인식하는 지각방식과도 연관된다. 컴퓨터 스크린과 미디어 화면을 통해 접하는 이미지들은 물성이 없는 이미지, 그 자체로서 표면에 존재한다. 인터넷의 여러 개 창처럼, 하나의 표면에 동시다발적으로 다른 세계가 공간을 점유하기도 한다. 회화의 물성에 비하면 이미지의 등장과 지각의 방식은 가볍고, 유연하며, 신속하다. 정희민의 회화에는 이러한 시대적 지각방식이 형식적, 내용적인 구성 모두에 고려된다. 평면으로부터 공간으로 나온 그의 작업은 사실 철저하게 표면화된 오늘날의 이미지, 지각의 과정을 고심한 결과이다. 공간에 밀착되고, 허공을 부유하는 이미지들은 철저하게 ‘평평해진’ 회화라 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회화의 평면성, 지금의 시점에서 고전이 된 지각방식으로부터 벗어나 동시대의 시지각 현상으로서 회화를 접근하고자 한 것이다. 표면의 뒤를 보지 않고서, 그리고 표면의 모서리를 다루지 않고서 어떻게 그 세계의 차원을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해 필자는 정희민의 작업으로 대답하고자 한다. 차원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오늘날 정희민의 작업은 시각구조에서 가장 말초적인 표면에서의 감각을 평면적인 레이어로, 동시다발적인 차원으로서 드러냄으로써 여전히 우리에게 회화의 평면성이 유효함을 밝힌다. 그리고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작가의 작업은 평면화 되어 가는 공간적/시대적 차원을 새로운 회화의 평면적 조건으로 제안한다.